MYARTS

  • 작가명 : 이창수, 한지  천연염료 363 x 242.5cm 2008
  • 작품을 클릭하시면 큰 화면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가노트
자연과 인간의 <人-然>
<自-然= 人-然 >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듯, 인간도 그러할지어다”

자연과 인간의 <인-연>은 아주 오래된 관계로서 때론 대척점에서 대립하기도 하지만,
인간은 자연과의 어우러짐 속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카테고리 속에서 바로 그 반복의 질서를 통해 우주의 근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서 인간(人)과 자연(自), 특히 생명의 탄생과 그 계속되어지는
반복적 관계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작품속의 자연은 종이가 되기 직전의 살아
숨쉬는 펄프와 닥나무 줄기들로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반복적 질서를 몸소 재현하듯 펼쳐진 펄프 위에 두드림의 반복 속에서 피어나는 요철을 통
해 자연과 호흡하고자 했으며, 그 공기는 리듬을 타고 이어진다.

내게 있어 펄프와 천연염료는 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한다. 펄프는 한지의 원료로서 재료라는 개념과 작품의 개념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작품이 되는데, 이는 곧 ‘바탕재료’적인 측면과 그 자체가 작품화되는
‘오브제’적인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펄프의 물성은 곧 작품의
본연의 존재방식이라는 메시지가 되어 작품의 독자적인 매체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여체의 부드러움과 너그러움 자연의 영속되어지는 탄생과, 마치 잎맥과도 같은
삶의 이미지, 형상으로 떠오른다. 어찌 보면, 이는 자연의 이원성에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은 어떤 자연적 과정 및 그 과정의 산물 양자를 모두 지칭하는 것이다. 또한 사물의
질료를 지칭하는 동시에 형상 즉 사물의 본질, 자연을 이끄는 힘을 지시한다.”는
정의에서 보듯 ‘자연’은 과거 시각적 모방의 대상이었다면, 내게는 정신의 본질적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객체로서의 자연과 주체인 내가 함께 펄프의 틈에서 살아
숨 쉬는 전일(全一)의 표면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작품속의 형상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무수한 자연의 형상을 텅빈 기호로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에는 뭔가 상처를 낫게 하는 ‘치유’의 힘이 있는 게 아닐까? 자유로운 ‘자기표현’이
예술의 유일한 목표이던 시절, 자연과 교섭하는 예술이란 케케묵은 작가들의 매너리즘
이었다. 그러나 어찌 인간과 자연의 인연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인간의 창조의 원천을
인간에게서만 찾으려 할 때 예술은 죽을 수 밖에 없다. 진부한 자기표현이 되고 만다.
하기에 이 끈질긴 자연과의 인연은 작가의 손끝에서 나오는 기교로서가 아니라 심상
(心象)으로 다시 말해, 내면의 무의식적 조형성의 원리로 표상되는 것이리라.

접기

작가 평론
우리 시대의 한국화는 다양한 재료와 색감 등을 활용하며 새로운 방법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전례에 없던 새로운 양상과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어서 마치 서양의 현대 회화를 방불케 할 정도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들은 재료와 표현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으나, 아쉽게도 예술 정신과 심미성에 대해서는 취약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의 정서나 미감 혹은 삶과 정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단순히 재료적인 측면만 고려하는 한국화가 아닌, 진정한 한국화의 창출을 위해서 많은 고민 속에서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매체의 물리적인 융합이 아닌, 우리들의 삶과 정신에서 우러나오는 근본적인 한국의 심미성과 조형성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소화시킬 것인가 하는 작가 정신과 자세가 필요하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 이창수의 예술 세계는 한국의 전통성과 심미성에 바탕을 두고 거기에 자신의 내면의 속성을 결합시키는 독특한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통성과 심미성은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도 타고난 감성과 체질에서 이루어진 수더분한 미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이창수의 작품에는 마치 우리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있을 것만 같은 고요함과 담담함이 은근히 스며있는 것이다. 한지를 녹이고 이를 토대로 하여 투박하며? 견고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을 주는 작품에는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감성과 미감이 담긴 정갈함과 소박함이 흐른다. 이것은 그만큼 작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속임 없이 진지하게 그대로 표출시키는 데 성공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창수가 이처럼 우리의 한지를 매개체로 신선하고 은근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표출한 것은 그만의 독특한 심미적 감성과 체질이 한국인의 정서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전통 한지와 천연 염료 그리고 먹으로 이루어진, 추상과 구상이 병합된 그의 조형 세계는 한국 미술의 정서가 흐르는 새로운 한국미술의 표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창수의 작품에 드러나는 조형과 형상이 주는 이미지에는 은근함과 숨김의 미학이 잔잔히 흐른다. 언뜻 보기에는 요철과 같은 입자가 추상적이면서도 정형적으로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의 그림의 이면에는 또 다른 조형의 이미지가 담겨져 있다. 이러한 또 다른 조형의 이미지는 워낙 함축적이어서 마치 추상의 한 부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이미지는 자연으로부터 출발한 인체의 한 부분이 조형적으로 형상화되면서 색다른 묘미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처럼 마치 기하학적이거나 추상처럼 느껴지는 인체를 자연의 섭리 속에서 찾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출발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이 자연으로부터의 생명을 작가 자신이 숨 쉬고 생활하는 우리 한국의 자연 속에서 표현해 내고자 하며, 자연이 주는 가장 큰 생명체를 사람으로 귀결시키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자연에서 드러나는 인체의 모습을 담은 이창수의 그림은 은근함과 투박함 및 섬세함 등이 우리의 정서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드러난 경우로서, 단순히 한국화적인 경직된 표현으로만 머무르고 있지는 않다. 또한 이러한 성향은 한국의 서양화가들이 보편적으로 그리는 추상주의나 모더니즘적 형식과는 또 다른 형태로 한국성을 담은 것으로서, 새로운 표현 형식의 하나이자 또 하나의 실험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하게 한국에서 제작한 한지를 재료를 하여, 이 재료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한국적인 물성을 바르게 체험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한국미의 정신적인 가치와 독특함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과거 동양화나 문인화에서 즐겨 사용하였던 관념성이나 즉흥성보다는 물성과 재료로부터 배어나오는 장인적인 기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농축되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작가 이창수가 일련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으로, 한지라는 물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화의 새로운 이미지를 표출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작가 자신이 한지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통하여 자신의 내적 심성과 감성적 조우를 하면서 이를 조형화하는 과정에서 표출해내는 독특한 심미적 특질이다. 그것은 작가의 조형세계와 한지가 지니는 특성이 서로 만나 이루어지는 투박함과 무질서 속의 질서에서 빚어져 나오는 담아함과도 같은 것이다. 이 담아함 속에는 자연에서 비롯된 새로운 생명성이 꿈틀거리고 한국인의 감흥과 정신이 춤을 추고 있다.
한지라는 물성 자체에 푹 빠져있는 작가 이창수는 ‘한지를 주무를 때 진흙보다도 더 부드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한지를 재료로 하고 활용한다는 면에서 지극히 한국적이다. 전통적인 한지를 사용하여 축적ㆍ응고시킨 견고한 화면에 일정한 입자와 인체의 일부분을 드러내는 그의 방식은 단순히 물성 그자체로만 자리하지는 않는다. 정교하면서도 균제와 비정형이 함께 공존하는 화면과 색상 그리고 조형 등은 작가가 한지를 통해 두터운 마티에르와 더불어 세계미술과 소통하면서도 한국적인 요소를 추출해내는 데 얼마나 고민하였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이창수의 예술 세계는 이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대 한국화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해 나가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의 작품은 담박하고 깔끔하면서도 구수하다. 깔끔함과 구수함은 서로 상반된 느낌이지만, 작가의 작품에서는 이런 상반됨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미적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형상적인 입자와 인체의 조화도 이런 맥락과 일치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비정형적인 정형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정형적인 정형에 우리 한국인의 정서와 투박하면서도 담아한 심미성 등이 함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언제나 진지함이 흐르는 작가 이창수의 작업실에서는, 녹아져 진흙처럼 부드러워진 한지로 된 물성들이 묵묵히 작업에만 매진하는 작가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신선한 조형들이 앞으로 그의 손에 의해 더욱 많이 창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접기

'이창수' 작가의 다른작품
같은 키워드의 작품
키워드 : 자연
공유하기

MYARTS